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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지 아파트의 딜레마: 도시 속 섬에서 지역 공동체로

교수님 글
작성자
In Kwon Park
작성일
2024-11-21 18:04
조회
4
서울의 한 대규모 아파트 단지

서울의 한 대규모 아파트 단지 [사진출처=박인권]

한국의 아이돌 그룹 블랙핑크의 로제와 세계적인 팝스타 브루노 마스의 콜라보레이션 곡 “APT(아파트)”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며 주목받고 있다. 로제가 마스에게 협업을 제안했을 때, 마스는 “APT가 뭐냐”고 물었다고 한다. 우리가 영어로 알고 있는 아파트는 정작 미국에서 흔치 않고, 더군다나 “APT”라고 부르지 않기 때문에 그의 궁금증은 당연했을 것이다.

이 노래의 모티브는 한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동명의 술 게임에서 왔다고 한다. 그러나 노래 가사에서 드러나듯, 이는 한국에서 가장 선호되는 주거 양식인 고층·고밀도 공동주택, 즉 아파트를 의미하기도 한다. 여러 층이 쌓여 고층을 이루며 다수의 가구가 한 건물에서 함께 살아가는 주거 양식이 바로 아파트다. 여기에 더해, 한국에서 특히 선호되는 또 하나의 특징은 ‘대단지’ 아파트라는 점이다.

요즘 아파트를 분양할 때 강조하는 것 중 하나는 대단지라는 점이다. 대단지 아파트의 가장 큰 장점은 단지 내에 모든 생활 편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지상 주차장을 지하로 옮겨 지상 공간을 수려한 공원처럼 조성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최근 개발된 대단지 아파트는 조경 시설뿐만 아니라 헬스장, 수영장, 도서관, 카페 등 다양한 커뮤니티 편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본래 공공 서비스로 제공되어야 할 시설들이 아파트 단지 안에서 자체적으로 제공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설을 갖추려면 아파트 단지의 규모가 커야 한다. 앞서 언급한 시설들을 갖추려면 1,000세대 이상의 규모여야 각 세대가 부담해야 할 관리비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규모의 경제’다.

아파트에 입주하려는 사람들은 대체로 큰 단지의 아파트를 선호한다. 이런 시장 수요로 인해 대단지 아파트의 가격이 더 높게 형성된다. 서울대에서 수행된 한 연구에 따르면,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할 때 단지 규모가 두 배로 증가하면 아파트 가격은 약 4% 상승한다. 이러한 대단지 아파트 선호 현상으로 인해 개발업체들도 가능한 한 대단지 아파트를 공급하고자 노력한다. 그 결과, 축구장 20개 이상의 면적에 해당하는 대규모 단지에 아파트가 조성되기도 한다.

대단지 아파트가 입주민들에게 여러 면에서 유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지역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는 그 자체로 도시에서 거대한 장벽이 될 수 있다. 아파트 단지는 외부 차량이나 사람들의 자유로운 출입을 제한하도록 설계되는 경우가 많다.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외부 세계와 단절되어 있다면, 단지 밖 사람들은 이로 인해 생활의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다. 보행로가 아파트 단지에 가로막혀 우회해야 하는 불편이 생길 수 있고, 도로가 단절되어 교통의 비효율이 발생할 수도 있다.

또한 아파트 단지 내의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과 지상 공간은 사유화된 공간이기 때문에 외부인의 이용이 제한되어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다. 집 근처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녹지와 공원이 부족한 서울에서, 양질의 조경 환경을 갖춘 대단지 아파트는 해당 아파트 주민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휴식 공간이 되겠지만, 외부인들은 상대적으로 더 큰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

극단적인 예로, 한 도시가 대단지 아파트 구역과 그 외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까? 모든 편의 시설이 아파트 단지 내에서 제공된다면, 그 단지 주민들은 지방자치단체에 세금을 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여길 수도 있다. 공공 서비스의 필요성이 줄어들고 모든 편의 시설과 서비스가 사적 능력을 기반으로 공급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지배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이러한 사적 서비스와 편의 시설의 독점적 이용을 위해 아파트 구역의 경계를 굳건히 지키고자 울타리를 설치하거나 경비를 강화할 수 있다. 이쯤 되면 두 구역은 하나의 도시에 속한다고 보기 어렵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위화감과 갈등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시는 건축물 심의 기준을 마련하여 아파트 단지 인허가 시 단지 개방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있다. 울타리를 설치하거나 외부와 높낮이 차를 두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공공 보행로를 만들어 단지 내부를 외부인이 통행할 수 있도록 하거나, 외부 공간과 지상 공간을 개방해 지역 주민이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경우 용적률 인센티브를 제공하여 더 높은 밀도로 개발할 수 있게 한다.

최근 서울에 재건축된 많은 아파트 단지는 이러한 기준의 적용을 받아 개방성을 갖게 되어 있다. 그러나 강남 지역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은 이러한 인허가 조건을 위반하고 울타리를 설치하거나 교묘히 단지를 설계하여 외부 세계와 단지 내부를 분리함으로써 외부인의 통행을 제한하고 있다.

때로는 이로 인해 지자체로부터 과태료나 벌금 처분을 받고 형사 고발을 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제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파트 단지를 외부와 분리하는 여러 시설과 조치들이 시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폐쇄형 주거 단지(게이티드 커뮤니티)의 여러 부작용은 이미 대단지 아파트가 주는 사회적 편익을 넘어서는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앞으로는 이러한 대단지 아파트를 외부 세계와 단절되지 않은 개방적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더욱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시 정부는 더욱 강력한 행정 지도와 인센티브 제공을 통해 대단지 아파트를 외부에 개방하도록 유도하고, 아파트 주민들 역시 전향적으로 생각하여 지역 주민과 상생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사실 아파트 지상 공간을 개방한다고 해서 외부 지역 주민이 감당하기 어려운 피해를 초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외부인의 이용으로 인한 아파트 관리 비용 상승분은 공공이 적절히 지원하면 될 것이다. 대단지 아파트가 이기적 욕망의 공간이 아닌, 외부 세계와 단절된 고립의 ‘도시 속 섬’이 아닌, 화합과 소통의 여유를 갖는 공간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할 때다.

출처 : 한국강사신문 2024. 11. 04. (https://www.lecturer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65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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