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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공화국’의 미래

교수님 글
작성자
In Kwon Park
작성일
2024-04-09 19:19
조회
148


“대한민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다”. 프랑스에서 한국을 연구한 대표적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의 말이다. 아파트는 이제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주거 양식이 되었지만, 주택문제에 관심이 있는 외국인들의 눈에는 매우 낯선 풍경인 모양이다. 필자가 친분이 있는 미국의 한 도시계획학자와 함께 서울에서 세종까지 답사를 간 적이 있는데, 그 역시 사방에 펼쳐진 아파트를 보며 매우 인상 깊다고 얘기했다. 그는 서울을 벗어난 외곽지역의 논밭 한가운데 우뚝 솟은 아파트가 무척 신기하다고 했다. 인구 밀도가 높고 땅값이 비싼 서울에 고층 아파트가 많은 것이 이해되지만, 신도시는 말할 것도 없고 농촌지역에까지 아파트가 이렇게 많은 것은 참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세종시에 밀집해 있는 아파트를 보고 그는 구소련의 임대주택을 떠올리기도 했다.

우리나라에 아파트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한국사람 10명 중 6명은 아파트에 산다. 땅이 넓은 미국에서는 50세대 이상 아파트에 거주하는 인구가 채 5%도 되지 않는다. 영국,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네덜란드 등은 채 20%가 되지 않고, 프랑스도 30% 정도이다. 이탈리아, 독일, 그리스, 스위스 등 일부 유럽 국가들의 아파트 비율이 50%를 넘기도 하지만, 인구의 과반수가 아파트에 사는 국가는 러시아, 체코,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등과 같이 동구권 국가들이다. 사회주의 시절 국가가 인민에게 양질의 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하기 위해 채택한 주택 유형이 아파트였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아파트가 이토록 많아진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 서울 회현동에 일본인이 지은 미쿠니아파트가 이 땅에 생긴 최초의 아파트이며, 해방 후 1957년 종암동에 중앙산업이 지은 아파트가 우리 손으로 지은 최초의 아파트이다. 그 이후 1960년대부터 급속한 도시화와 함께 늘어난 도시 인구를 수용하고 주택문제 해결을 위해 아파트를 빠르게 짓기 시작했지만, 아파트는 그렇게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한때 국민 애창곡이었던 노래 ‘아파트’가 발표되기 이태 전인 1980년만 하더라도 우리 국민의 4.4%만이 아파트에 살았다. 그러다가 1980년대 말 분당, 일산 등 수도권 신도시에 대단지 아파트들이 지어지고, 그 이후로 지어진 주택 대부분이 아파트이다 보니 아파트 거주 인구가 많아졌다.

하지만 ‘아파트 공화국’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지 않은 것 같다. 2021년 이후 우리나라 인구는 감소하기 시작했고, 실질적인 주택 수요의 단위인 가구 수 역시 2020년대 말부터는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국적으로 인구가 감소한 것은 우리 근대 역사에서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다. 한마디로 주택에 들어갈 사람이 부족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이 30년 정도 지속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우리 아파트 수명은 대략 30-40년 정도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때가 되면 집을 부수고 다시 짓는 재건축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문제는 더 이상 아파트 수요가 늘어나지 않아서, 재건축하려고 해도 용적률(부지 면적 대비 연면적 비율)을 높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존 주민들이 재건축 비용을 온전히 다 부담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재건축할 때 아파트를 더 높게 더 많이 지어서 비조합원들에게 판 돈으로 비용을 충당했지만, 그때가 되면 순전히 조합원들의 돈만으로 새집을 지어야 한다는 말이다. 갑자기 몇억 원씩 돈을 내야 하니,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40-50년 넘은 아파트들이 흉물로 남아 있는 곳도 많이 생길 수 있다. 특히 인구 감소가 많은 비수도권에서는 이런 문제가 더 심각할 것이다. 이미 지방 소도시에 가면 오래된 폐가에 가까운 아파트들이 유령 주택처럼 방치된 것을 종종 목격할 수 있는데, 앞으로는 이런 광경을 심심치 않게 목격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나라에서는 이런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아파트 장기충당금(Condo Reserve Fund)을 충분히 거두게 하는 법이 있다. 아파트와 같은 대규모 구조물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으면 도시에 매우 부정적인 효과를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장기충당금은 일상적인 유지관리뿐만 아니라 대수선이나 부동산 자산의 교체를 위해 사용되어야 하므로, 주택의 상태에 따라 충당금의 규모를 키워가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나중에 재건축까지도 할 수 있도록 충분한 자금을 축적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장기수선충당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큰 자금이다. 이제 우리도 이런 준비를 시작해야 할 때가 된 것은 아닐까?

출처: https://www.lecturer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50229
전체 2

  • 2024-04-15 10:52

    마침 며칠전 KBS "추적 60분"(2024.4.12)에서 더 이상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닌, '돈 먹는 하마'가 된 재건축 이야기를 방영한 터라,
    교수님의 말씀이 더 와 닿았습니다.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중요한 시점이라 생각됩니다.

    연구실 구성원들께 해당 방영분 링크도 함께 공유합니다!
    (https://youtu.be/eSHChhUN7c0?si=51Qy9xIahoEg5eu3)


  • 2024-04-15 11:17

    제일 걱정되는 것은, 아파트 거주민이 어느 정도 줄어 공실이 생겼을 때 관리비 부담에 따른 주택 수요 임계점이 더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이 도시 외곽 지역뿐만 아니라 도심이더라도 규모의 경제가 실현이 되기 어려운 소규모 아파트 단지에서 공동화 현상이 패치워크 느낌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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