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글
명문대와 지역 발전의 복잡한 관계
작성자
In Kwon Park
작성일
2025-08-05
조회
533
명문대 만들기와 지역 발전이 모두 이뤄지려면 대학과 지역 사회 및 산업의 연계가 중요하다

서울대 정문 [사진출처=박인권]
새 정부의 대표적인 교육 정책으로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이는 비수도권의 주요 거점대학 9곳을 서울대에 버금가는 명문대로 육성하겠다는 정책이다. 이들 지역 대학의 학생 1인당 교육비를 서울대의 70%까지 끌어올림으로써 지방에서도 양질의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 계획이 성공하면 수험생으로서는 좋은 대학이 많아져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양질의 대학에 입학하기도 더 쉬워질 것이다.
주목할 점은 이 정책이 교육 정책이면서 동시에 지역 정책이라는 사실이다. 이 정책의 배경에는 인구 감소와 수도권 인구 집중으로 위기에 처한 지방을 살리려는 목적이 있다. 지역의 대학을 명문대로 키우면 우수한 청년들의 수도권 집중을 완화할 수 있고, 졸업생들이 지역에 정착하면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이라는 취지다. AI 시대의 경제 발전의 핵심은 우수한 인재에 달렸다는 점을 생각하면 합리적 접근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역 대학의 발전과 지역 발전의 관계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우선 서울 밖에서 서울대 수준의 명문대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재정 지원 확대는 대학 발전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대학이 발전하려면 주변 지역의 산업, 인프라, 교육, 문화, 민간 및 공공 서비스 등 다양한 측면에서 좋은 환경이 필요하다. 이는 대학 구성원인 학생, 교수, 직원, 연구원들이 그 지역에서 생활하고 소비하며 자녀를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현대 대학의 연구와 교육은 지역 사회와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으며, 궁극적으로 졸업생들이 취업할 수 있는 일자리 환경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역 거점대학들이 과거보다 명성이 떨어지고 이른바 ‘인서울 대학’이 뜨는 것도 결국은 이러한 지역의 ‘후광효과’ 때문이다. 이때 지역은 대학이 위치한 좁은 범위의 기초지자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대학 구성원의 활동 범위는 그보다 넓기 때문이다. 예컨대 서울대는 관악구를 넘어 서울시 전역의 후광효과를 누릴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서울대가 만약 서울이 아닌 비수도권에 있다면 지금처럼 좋은 대학의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물론 지역과 무관하게 발전하는 것처럼 보이는 대학도 있다. 압도적으로 많은 자원을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에 집중 투자하면 지역적 맥락의 어려움도 어느 정도는 극복할 수 있다. 각 지역의 과학기술원(대전 KAIST, 광주 GIST, 대구 DGIST, 울산 UNIST)과 포항공대, 한국에너지공대 등이 그런 경우다. 하지만 카이스트의 지속적 성장도 대학 주변 지역의 연구개발 시설과 관련 산업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역 대학이 장기적으로 성장하려면 지역의 관련 산업, 일자리의 성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지역 대학이 명문대로 성장한다고 해서 지역 발전이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지역 의대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지역 의대들은 전문 자격증이라는 높은 진입 장벽으로 보호받는 고소득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우수한 인재들을 끌어들여 지역 대학 내 명문대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렇게 배출된 고급 인재들이 모두 지역에 정착하여 지역 발전에 기여하지 못한다.
비수도권 지역 의대 졸업생들의 지역 잔류 비율은 40%도 되지 않으며, 경북과 울산의 경우에는 이 비율이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 지역 의료 인력 양성을 목표로 도입된 의대 지역인재전형 역시 이러한 흐름에 큰 변화를 주지 못하고 있다. 의대 졸업생들의 지역 잔류율이 낮은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지역에 수련과 취업 기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의대 입학 정원은 비수도권이 66%를 차지하지만, 졸업생들이 수련할 수 있는 전공의 정원은 38%에 불과하다. 따라서 비수도권 의대 졸업생 상당수는 수련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해당 지역을 떠나야 한다. 개업의들이 잠재적 고객들이 집중된 수도권에 자리를 잡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지역 의대들은 명문대 수준으로 우수한 학생들을 유치하지만, 지방 의료 서비스 공급난이 해결되지 않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작용하고 있다.
의대 사례가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대학에서 우수한 인재를 키워도 이들이 취업할 일자리가 없다면 졸업 후 지역에 남을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대학 교육과 연계된 지역 산업 기반이 없다면 명문대 육성이 지역 발전에 미치는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우수한 인재를 보고 일부 기업들이 대학 주변으로 이전할 수도 있고, 졸업생들이 창업하여 일자리를 창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그냥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기업이 이전하거나 창업하려면 인재 외에도 인프라, 주택 및 정주 여건, 민간 및 공공 서비스, 문화 자원 등 다양한 요소가 산업적 필요와 부합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명문대 육성과 지역 발전의 이러한 복잡한 관계는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우선, 비수도권 대학을 명문대로 키우기 위해서는 서울보다 훨씬 많은 자원의 투입과 대학의 필사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대학과 지역 산업 간 유기적 연계가 가능한 분야를 발굴하여 집중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역 대학의 발전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설사 명문대 수준으로 발전하더라도 단지 수도권을 위한 '인재 배출 공장'에 그치고 말 것이다. 따라서 지역 사회, 지역 산업 생태계, 대학 교육 간의 연계 협력과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 과제이다.
출처 : 한국강사신문 2025. 7. 16. (https://www.lecturer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82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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