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글

대학이 지역과 함께 발전하는 길

작성자
In Kwon Park
작성일
2025-08-05
조회
576

미국 ‘철강 도시’ 피츠버그의 부활에서 배운다
대학 중심 지역혁신 생태계 구축이 필요하다



피츠버그대학교 [사진출처=박인권]

좋은 교육기관을 만들어서 지역을 발전시키는 것이 가능할까?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지역 발전을 위해서는 일자리가 핵심이니 기업을 유치해야 하고, 기업이 지역에서 생산하려면 인재가 있어야 하니 좋은 교육기관이 있으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좋은 대학은 인재를 길러낼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일자리와 소비의 중심지로서 구실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중등학교는 물론이고, 대학은 보통 몇 년간 머무르는 곳이지 오래 사는 곳이 아니다. 대학에서 지식과 역량을 쌓은 졸업생들이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와 역할을 찾아 떠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들을 고용할 기업이 굳이 대학 근처에 있을 이유도 없다. 특히 대학이 단순히 책 속의 지식과 예술을 후속 세대에게 가르치는 ‘상아탑’에 머물러 있다면 더욱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는 우수한 대학이 많은 인재를 길러낸다고 해서 그 지역이 자동으로 함께 발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최근 대학은 상아탑에 머무르기보다는 ‘지역혁신의 중심’으로서 지역사회와 좀 더 적극적인 관계 맺기를 하고 있다. 대학의 교수와 대학원생들은 단지 기존 지식을 학습하는 것을 넘어서, 지역 산업체와 공공기관, 연구소들과 협업하여 연구하고 그것을 통해 교육하는 산학연 협력 활동을 매우 중시하고 있다. 이들 기관은 대학이 키워낸 인력을 채용하는 수동적 관계를 넘어서, 산업 혁신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의 창출을 대학에 요구하고 대학이 필요로 하는 자원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카이스트 등 명문대의 대학 예산에서 연구비 예산이 전체의 절반에 육박하는 구조만 봐도 바로 알 수 있다.

대학과 지역사회의 관계가 이렇게 긴밀해진 상황에서는 산업체와 연구소가 대학 근처로 가려는 동기가 커진다. 이들 기관이 오면 대학을 졸업한 인재들도 대학 근처에 머물게 되고, 이들을 보고 더 많은 기업이 대학 주변으로 모이게 되는 선순환이 일어난다. 많은 사람이 모이면 소비시장이 형성되고, 문화예술 및 서비스업 등 다른 산업도 동반 성장한다. 이런 식으로 대학이 지역혁신의 중심 역할을 하며 지역과 함께 발전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미국의 피츠버그는 주목할 만한 사례다. 과거 철강산업의 중심도시였던 피츠버그는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에 철강산업의 쇠퇴와 함께 심각한 경기 침체를 겪었다. 1979년부터 5년 사이에 제조업 일자리의 60%가 사라져서 대규모 실업이 발생하고 많은 사람이 도시를 떠났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부터 카네기멜런대학과 피츠버그대학을 중심으로 한 대학-산업 협력 모델을 통해 기술 중심 도시로 재탄생했다.



카네기멜런대학교 [사진출처=박인권]

일찍이 로보틱스 연구소로 유명한 카네기멜런대학은 자율주행차와 인공지능 원천기술 연구에서 세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피츠버그대학 역시 생명과학과 헬스케어 관련 분야에서 뛰어난 연구를 수행하고 인재들을 배출해 왔다. 이 대학들은 기초연구를 산업화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했고, 졸업생들도 대학 주변에서 창업하여 대학과의 협력 관계를 이어 나갔다. 특히 인도 등 아시아에서 온 우수한 유학생들이 졸업 후에도 대학 주변의 오클랜드 지역에 남아 스타트업을 이끌었다. 대학을 중심으로 지역 산업과 연계하여 기술혁신 노력을 기울이자, 그 지역에는 혁신 생태계가 자리 잡았다.

이러한 혁신 생태계는 세계적인 기업의 유치로 이어졌다. 2006년에는 구글이 카네기멜런대학과의 협력 강화를 위해 이 도시에 연구개발센터를 개소했고, 2015년에는 우버 역시 이 대학 출신 인력을 대거 채용하여 고급기술그룹(ATG)을 이 지역에 설립했다. 세계적인 의료기관인 피츠버그대학병원도 생명과학 및 헬스케어 분야에서 본교와 연구 협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했다. 화이자와 같은 세계적인 제약 회사들도 피츠버그대학과 공동 임상시험과 의약품 개발을 위해 협업했고, 필립스 헬스케어와 같은 의료기기 기업도 양 대학과 함께 영상 진단기기 및 데이터 분석 시스템을 공동 개발했다.

이 과정에서 피츠버그시 정부 역시 대학 주변 지역이 ‘혁신지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자기 역할을 했다. 혁신지구는 대학을 앵커(중심)로 하고, 벤처와 민간기업, 인큐베이터, 공공기관이 연결되는 ‘앵커 플러스 모델’을 따라 형성되었다. 시 정부는 혁신지구 발전에 필요한 인프라를 지원하고, 규제를 개혁했다. 주거와 상업, 연구시설이 한 공간에 공존할 수 있도록 복합용도 개발을 추진했고, 자본이 부족한 스타트업들을 위해 공유 오피스, 협업 공간 등 공공 공간을 활성화했다. 자율주행 실증을 위한 테스트 베드를 조성하고 도로 인프라를 개선했으며, 공공 데이터를 공유하기도 했다. 청년들이 거주하기 좋은 환경이 되도록 친환경 건축과 스마트 인프라도 도입했다.



두 대학이 위치한 피츠버그 오클랜드 지역 [사진출처=박인권]

이처럼 피츠버그는 대학의 연구 역량과 지역 산업계의 적극적 투자, 그리고 지방정부의 지원이 삼위일체를 이루며 지역 재생에 성공했다. 이 모든 과정은 지역과 대학의 자발적인 상향식 노력의 결과로 이루어진 것이지, 연방정부의 대규모 지원 때문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물론 그들에게는 이미 세계적인 수준의 대학이 있었고, 이 기관들이 앵커로서 중요한 기능을 했기 때문에 한국 비수도권의 쇠퇴 지역보다는 상황이 더 나았다.

이런 점에서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과 같은 강력한 정부 지원은 지역대학이 앵커로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대학의 발전이 지역 발전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이뤄지기까지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세계적인 대학들이 이미 존재했던 피츠버그와 같은 도시에서도 이러한 지역재생이 이뤄지기 시작할 때까지는 10년이 넘게 걸렸고, 대기업의 유치와 획기적인 성장으로 이어지기까지는 20년이 넘게 걸렸다. 지역의 혁신 생태계는 외부에서 이식할 수 없고 결국은 아래로부터 자생적으로 만들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도 지역대학 육성 정책을 추진함에 있서 장기적인 안목과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지역의 대학에 재정지원을 확대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대학 스스로 기초연구를 산업화하고, 지역 산업 및 지방정부, 공공기관 등과 연계 협력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중앙정부의 정책은 그러한 노력에 마중물을 대는 역할, 대학이 대학답게 커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

출처 : 한국강사신문 2025. 8. 1. (https://www.lecturer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83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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